여러분 오늘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가 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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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붕괴와 그 이후 

1989년 동독 사람들은 언론자유화, 여행개방을 주제로 매주마다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동독 지도부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불간섭 정책은 확고했고, 그 쪽도 그 쪽대로 급한상황이었던지라 결국,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여행자유화 정책을 1989년 11월 9일 오후 6시 58분경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

물론 일종의 회유책으로 나온 정책이었으니만큼 일단 동서독 국경을 통한 입출국 허용및 행정 절차 간소화, 여권발급기간 단축등이 발표되었으나 실제론 여권발급기간 단축 이외엔 별로 달라졌다고 할만한게 없었다.


그런데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어떤 이탈리아 기자가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되느냐"라는 질문을 했고, 휴가 후 복귀하자마자 회견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당 지도부에서 결정한 정책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동베를린 SED 총서기 귄터 샤보프스키가 아무 생각없이 지연 없이 즉시(Sofort, unverzüglich.)[18]라고 대답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독일측 기자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걸 알아챘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독일어가 서툴렀던 저 이탈리아 기자가 회견 직후 이 여행자유화 조치를 베를린 장벽 붕괴로 착각하고 본국에 급전을 보내는 (동독 입장에서) 세계구급 오보를 냈다. 이 소식은 미국을 건너 그날 밤 서독 텔레비전에까지 퍼져나가 순식간에 수많은 동서독인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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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양쪽 시민들은 공구를 가지고 와서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고(빨리 벽을 부수기 위해 오함마드릴 심지어 불도저와 크레인까지 양쪽에서 끌고 나왔다!), 이에 대해 제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동독 국경경비대원들과 세관원들도 처음에는 막아 보려고 했지만, 통제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인파가 계속 밀려와서 상황 통제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뭣보다 총서기도 당지도부의 결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마당이니 국경경비대원들도 상부에서 어떠한 지시도 받지 못했던 상황인지라 결국 그냥 멍 때리고 지켜볼 뿐이었다. 장벽 해체 소식을 듣게 된 서방의 여러 예술인들도 베를린으로 와서 특별 콘서트를 여는 등, 연말까지 축제 분위기가 계속 되었다.

다만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는데,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나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 같은 인사들은 장벽 붕괴가 곧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고 이는 유럽 세계의 균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대놓고 디스하기도 했다. 독일이 통일되면 다시 강대국이 되어 영국과 프랑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란 두려움은 만성적인 것이었고, 실제로 당시엔 그럴만도 했다(...) 독일 내에서도 아직 통일에 대한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다고 느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상관 없이 장벽의 해체는 계속되었고, 1990년 10월 통일이 공식 선언된 이후에도 계속 장벽과 제반 시설물에 대한 철거, 끊어진 도로와 철도의 복구가 계속되었다. 이 작업을 위해 3년 동안 1억 마르크의 예산과 400여 명의 해체전문가가 투입되었고, 철거 과정에서 제거된 흙과 시멘트만 해도 무려 75만톤에 달했다. 흠좀무

장벽 제거, 통일 논의와 더불어 그 동안 베를린을 분할 관리해온 미군과 영국군프랑스군소련군(이후 러시아군)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시의 경계 업무를 독일 측에 완전히 인계했다. 

2000년대에 가서는 기존 장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없어졌는데, 다만 일부 구간에는 분단 당시의 상황을 후대들에게 재교육하기 위해 그대로 남겨놓은 곳도 있다. 대표적인 구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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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 지구의 뮬렌슈트라세에 있는 장벽 존치 공간으로, 약 1.3km 구간의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갤러리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분단 시절 자주 낙서와 그래피티 대상이 되었던 장벽을 여러 현대미술가들의 캔버스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2013년 3월 일부분이 헐리고 말았다. 아래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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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의 지형 (Topographie des Terrors)
    크로이츠베르크 지구의 니더키르히너슈트라세에 있는 존치 공간인데, 예전에 나치 친위대 산하의 악명높은 비밀경찰 조직이었던 게슈타포 본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통일 후 이들이 벌여놓았던 참상과 잔악함을 후손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박물관이 조성되었고, 본부 바로 옆에 있었던 약 80m 가량의 장벽도 허물지 않고 남겨두어 전시 공간으로 쓰고 있다. 가장 포토존과 거리가 먼 곳이다. 

  • 체크포인트 찰리와 포츠담 광장 사잇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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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당시 체크포인트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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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체크포인트 찰리의 모습 
검문소를 철거하고 광장을 현대적인 재건축하기 위해 이 구간도 원래 헐릴 예정이었지만, 분단 시대 가장 유명했던 장소이기도 했으니[19] 역사 유산으로 남겨놓자는 여론을 받아들여 존치시키고 있다. 현재 검문소 앞에는 냉전당시 군인 복장을 하고 있는 연기자들이 있는데 2유로 정도를 주면 같이 사진을 찍어준다.

  • 포츠담 광장
    위 세 군데처럼 큰 규모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으며, 서너 개의 장벽 구조물을 장벽이 있던 자리를 따라 세워놓은 정도이다. 거의 관광객용 포토존 급. 진지하게 장벽을 구경하고 싶다면 이쪽은 피하자. 어차피 포토존 아닌 곳을 찾기 힘들지만(...) 

이외에 철거된 구간들에서 장벽이 서 있던 곳을 표시하기 위해 도로에 박아놓은 표석이나 기념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철거 후 남은 잔해 장벽들은 전세계에 보내져 전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우리은행의 자금 지원으로 서울 청계2가 사거리의 장교빌딩과 한화빌딩 맞은편에 조성된 '베를린 광장'에서 볼 수 있다. 장벽 전체는 아니지만, 거기서 떼어낸 파편 두 개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상주하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경기도 의정부시 평화 통일 공원에도 장벽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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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베를린 장벽. 장벽 왼쪽의 가로등은 베를린에서 쓰이고 있는 것이고, 베를린의 상징인 곰 조각이 같이 전시되고 있다)

2009년 11월 9일에는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베를린에서 대대적인 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부터 약 1000여 개의 스티로폼 장벽들로 도미노를 쌓고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 월경을 허가한 바로 그 시각에 밀어서 넘어뜨리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이 행사는 ZDF 같은 방송국들에서 실황으로 중계되었다. [http]영상

동시에 아직도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 예술인들을 초청해 장벽과 분단을 주제로 한 예술품을 전시하는 행사[20]도 열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때문에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축조된 장벽의 철폐를 요구하는 평화운동가들의 집회도 개최되었다. 인터넷 상에서도 장벽 철폐 = 규제 철폐라는 은유로 중국 같이 인터넷 접속을 제한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넷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장벽 해체 이후 남은 몇몇 조각들은 관광객들이나 수집가들을 상대로 판매한다는 모양. 월드 인 컨플릭트 한정판에도 장벽 조각이 들어 있다.[http]# 가끔 몇몇 사기꾼들은 여행객들을 상대로 의미없는 돌덩이를 '베를린 장벽 조각'이라고 파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일부 기념품점에서 5~10유로로 작은 돌조각을 살 수 있다. 베를린 장벽 그림의 엽서의 일부로 플라스틱 구에 들어있는데 매우 그럴듯하다... 

2013년 3월 27일 이스트사이드에 남은 장벽이 새벽에 기습적인 [http]철거로 무너졌다. 고급 아파트먼트 단지를 위한 도로를 내고자 이뤄진 것인데 장본인인 건설업체 대표는 도로공사가 끝나면 복원하겠다고 하여 욕먹고 있다.
[이 게시물은 심플게임님에 의해 2015-04-30 23:04:51 밀리터리에서 이동 됨]

Comments

M 심플게임
11월 9일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었네요.
G 비누
한국도 빨리 통일하면 좋겟네요.
17 howon95
흙과 시맨트가 75톤이나 되는데 우리나라도 무게를 잴수있는때가 와야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