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W. Adams) IGDA 공동 창업자

게임 산업의 변화를 주제로 매년 정보를 공유해온 '2016 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KGC2016)'이 오늘(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개막했다.

IGDA(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의 공동 창업자이자 게임기획개론, Game Mechanics의 저자인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W. Adams)’ 가 ‘컴퓨터 게임디자인의 철학적인 근원(The Philosophical Roots of Computer Game Design)’ 이라는 주제로 KGC2016의 첫 번째 키노트를 진행했다.

그는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게임의 스토리텔링의 약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 내용 전달 편의를 위해 강연자의 시점에서 서술합니다.



■ 고전 이론과 낭만 이론의 이해

게임이라는 상호작용 미디어의 철학적 근본은 게임 개발 문화다. 개발 문화에서 파생하는 결과물이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의 근본적인 철학을 문화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 문화는 아이디어에 영향을 끼친다.

철학을 대표하는 두 가지 관점인 영국 철학과 프랑스 철학은 차이가 있다. 영국 철학은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추상적 영역을 탐구하며 연역적 사고에 바탕을 두는 반면에 프랑스는 이견의 문제에서 접근한다. 때문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일상생활의 자료를 수집하여 추론한다. 샤르트르(Jean-Paul Sartre)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e)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분법적으로 이를 이성과 감성의 차이로 나눈다. 우리는 영국 철학처럼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고전적 이론이라 부르고 혼란스러우며 기분과 감성에 따라 이어지는 이론을 낭만적 이론이라 칭한다.

만약 투표제도를 만든다고 했을 때 고전주의자들은 완벽한 규칙에 따른 공평성을 우선시하겠지만, 낭만주의자들은 모두가 기뻐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연장선에서, 낭만주의자들은 프로그래밍이라는 행위 자체가 감정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행위가 아니므로 이를 창조적인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낭만주의자들이 가지는 사고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찰스디킨스의 문학을 많은 과학자는 모르고, 많은 작가는 열역학 제2 법칙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정교한 알고리즘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고전주의자도 감정이 있으며 반대의 낭만주의자도 이성적 판단을 하기도 하기에 완벽하게 나눌 수는 없다. 뉴턴은 대단히 많은 법칙을 자연 현상에서 발견했다. 그러므로 고전주의 이론과 낭만주의 이론, 다시 말해 과학과 인문학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 성의 역사에 대한 사상을 통해 널리 알려진 미셰 푸코(Michel Foucault, 우)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 게임 개발자들은 기술을 활용하는 엔지니어

과거도 그렇고 비교적 최근에도 프로그래머는 엔지니어로 한정됐다. 게임 개발에 투입되는 인력은 모두 엔지니어였다. 심지어 작가조차 엔지니어로 분류됐다. 나는 EA의 'MADDEN NFL' 실황 중계 시스템을 제작하면서 의미뿐만 아니라 문장이 실시간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음성학적인 측면을 고려해야만 했다.

모든 비디오 게임은 폰 노이만이 만든 기계에서 촉발된 '기술'의 집약체 일 수밖에 없다. 아주 작은 에러가 발생하면 모든 추론을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은 고전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아주 좋은 예가 '0'과 '1'로 게임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트릭스(Matrix, 行列) 이야기를 해보자. '피타고라스 모델'은 모든 것을 수치화로 정의하고 알고리즘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매트릭스의 즐거움은 매트릭스를 찾아내고 그 작동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완전한 시스템의 근본은 시스템화된 설명을 찾는 데 있다. 그러므로 시스템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코드화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 '매트릭스'에도 잘 나타난다.

게임은 영화 '매트릭스'와 마찬가지로 게이머에게 실질적인 세상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미지털 미디어에 저장된 알고리즘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 게임 개발자들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과 같은 영국적 사고를 하고 있다. 장 폴 샤르트르,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미셸 푸코와 다르다. 이들은 '2+2'로 온 우주를 만들어내고 IT 산업을 만들어간다.


■ '좋아졌다'와 '빨라졌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혁신을 일으켰던, 집적회로 등으로 현대적 반향을 일으켰던 빅토리아 시대에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상 과학 장르가 등장한다. 바로 '스팀펑크'다. 당시의 기술적 발전은 매우 놀라웠으며 때문에 기술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기술 결정론'이 대두하게 된다. 기술 결정론은 현대 게임 개발에 많이 파고 들어있다.

과거 플레이스테이션3가 발매되기 전, '플레이스테이션3는 플레이스테이션2보다 1,000배 좋다'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이 1,000배는 무엇을 뜻할까? 단순히 하드웨어가 1,000배가 빨라진 것인가? 게임이 1,000배 재미있어진 것인가? 스토리가 1,000배는 흥미로워진 것인가? 아니면 캐릭터가 1,000배는 똑똑해진 것인가.

빅토리아 시대라면 단순히 하드웨어가 좋아진다는 말은 하드웨어가 발전했다는 말로 귀결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기술을 가지고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에는 이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과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과 지금을 나누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플레이스테이션이 좋아졌다는 저 멘트 자체는 정확하지 않다. 빅토리아 시대 때 '더 강력한 증기 엔진을 발명했으니 이 증기 엔진을 활용하여 더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스팀펑크



■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왜 '구릴'까?

게임은 RPG와 같은 특정 장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서사시다. 스포츠와 레이싱 같은 장르는 문학과 유사성이 전혀 없다.

대부분 개발자들은 후기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후기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몰입감' 때문이다. 후기 모더니즘이 대두하던 사회에서는 그래픽 디스플레이기술이 좋지 못했으며 A.I가 뛰어나지 않아 캐릭터 구현이 어려웠다. 그리고 가장 기술적인 문제인 하드웨어가 이를 따라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기 창조 알고리즘을 수십 년간 이어왔다. 몰입감이 뛰어난 책을 쓰는 것 자체는 쉽다. 그리고 말미에 '이건 겨우 책에 불과하다'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몰입에서 독자를 꺼내는 것을 즐기는 작가도 있다. 영국 작가 존 파울즈(John Fowles)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됐을 때도 많은 사람은 몰입감에 호평했다.

하지만 게임은 의도적으로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전혀 없다. 그래서 스스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연결된다. 놀이는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의 책은 현재에 보기에는 지루하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읽어야 한다. 게임은 빅토리아 시절의 이 소설들과 같다. 많은 참여와 인내를 요구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게임 시나리오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작가를 꼽자면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을 들 수 있다. 게임 문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영웅담을 창조했다. 영웅적 퀘스트는 게임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도전, 투쟁, 장애물 극복의 역사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이를 매우 잘 표현했다.

게임은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을 아주 멋지게 다른 매체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같은 작품은 게임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

여기서 앞서 말했던 낭만 이론이 필요하다. 게임 개발과 낭만 이론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은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빼빼 마르고 어깨가 좁은 너드(Nerd, 얼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메탈리카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나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 없이 그냥 게임을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들 너드의 에너지가 게임 문화를 이끄는 바탕이 된다. 감성적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고전주의적 수단으로 낭만주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하는 게임

예술가, 배우, 오케스트라 지휘자, 작가들의 경우 기술 결정론자가 될 수 없다. 당연하게도 기술은 이들에게 핵심적인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게임의 기술이 자신들의 기술보다 몇 세대 앞서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게임의 스토리 텔링은 문학의 그것에 비해 몇 세대 뒤처져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이야기는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대담한 행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고전주의적 수단으로 낭만주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형식과 논리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너드의 시(saga)'다. 기술을 기반으로 낭만주의적인 창조를 이룩하니까 말이다.

테트리스와 같은 단순 구조의 게임은 별다른 철학적 사고 없이도 하드웨어 자체가 게이머를 지원할 수 있다. 톨킨은 증기 혁명 이후의 사람이다. 그런데도 톨킨은 낭만주의이론에만 몰두하고 이를 어필하기위해 글을 썼다. 하지만 게임은 톨킨의 이야기를 쓰더라도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고전 이론에 입장에서 개발자는 알고리즘, 전략, 시스템적으로 단순히 플레이어들이 계속 게임을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감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스토리와 이를 전달하는 방법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게임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부분 작가, 배우,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개발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할 수 있기는 한데, 그걸 왜 해?'라고 대답한다. 고전주의적인 발언이며 굉장히 남성적이과 영미권적인 발언이다.

게임은 비즈니스이자 하나의 매체다. 우리는 아직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전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예가 같은 흥행 산업인 영화다. 여성은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성 호르몬을 자극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즉 좋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게임의 이야기는 화려한 것은 많지만, 영혼은 없고 덕후(an addict)같은 느낌만 있었다. 기술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서사력은 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게임이라는 쌍방향 매체가 가진 특징을 진정하게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기존의 문학은 절대 쌍방향 매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했을 때 텍스트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상징이다. 개발과 소비라는 양 측단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는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다시 말해 엔지니어링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게임 개발에 있어 기술적 혁신과 미적 감각을 잘 조합해야 한다. 영국의 과학자 겸 소설가 찰스 퍼시 스노(C.P. Snow)가 말한 과학과 인문의 조합이 바로 게임이다. 그러므로 머리와 감성을 동시에 가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와 같은 인재상이 필요하다.

▲ 과학과 인문의 만남이 바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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